“그땐 미안했어”·”당하지만 않겠어”..’미투’가 바꾼 일상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김예나 최평천 기자 = “그동안 내가 친하다는 이유로 쉽게 말하거나 행동했던 일들이 떠오르더라. ‘미투’ 운동을 보면서 이대로는 큰일 날 수도 있겠다 싶어 연락했어. 혹시 그때 상처를 받았다면 용서해줬으면 좋겠어.”

직장인 김모(32·여)씨는 며칠 전 가깝게 지내온 남성 친구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받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살을 빼라는 둥 외모 지적을 장난삼아 해오던 친구가 회사에서 성희롱예방교육을 듣고 반성하게 됐다며 사과를 해온 것이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에서 시작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한국 사회 곳곳을 변화시키고 있다. 김씨의 친구처럼 일부 남성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특히 대학가에서는 페이스북 ‘대나무숲’을 중심으로 ‘미투’ 운동에 동참하는 남학생들이 속속 눈에 띈다.

12일 페이스북 페이지 ‘한양대 대나무숲’을 보면 입학처장이 학생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의도치 않게 성폭력·성희롱의 가해자가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해달라”고 언급한 것을 놓고 비판을 제기하는 글이 올라왔다.

익명의 글쓴이는 “성희롱을 한 사람이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것까지 걱정하다니 왜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메일을 보낸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고, 일부 남학생들은 실명으로 “철저히 가해자 입장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부적절한 표현일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다음에는 더 세련된 표현이 나왔으면 좋겠다”와 같은 댓글을 달았다.

결국, 입학처장은 “피해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가해자의 곤란함을 먼저 생각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등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며 “이로 인해 상처받았을 학생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는 메일을 다시 보냈다.

 

 

 

 

 

물론 변화의 바람이 미치지 않은 곳도 있다. 남성 비중이 높은 대기업에 다니는 전모(30·여)씨는 ‘미투’가 유행처럼 번져나간 뒤 회식자리가 더욱 불편해졌다고 한다. 간부 위치에 있는 남성들이 대놓고 여성들에게 비아냥거리는 발언을 하기 때문이다.

전씨는 “부장이 술자리에서 말끝마다 ‘요새 여자들 조심해야 한다, 미투 운동 벌일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데 면전에 대놓고 비꼬는 것 같아서 불쾌했다”며 “여자들도 남자들 몸을 품평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는 할 말이 없어지더라”고 털어놨다.

대기업에서 비서로 근무하는 A(30·여)씨는 “미투 이후 임원들이나 회사 간부들이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엉덩이를 만지다 어깨를 만지는 것으로 바뀐 정도”라며 “이 분위기가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특히 제자들을 상습 성추행한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던 배우 조민기씨가 숨지고 나서 노골적으로 ‘미투’를 불편해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자영업자 최모(55)씨는 “물론 대단히 나쁜 짓을 한 것은 맞지만 이런 식의 문제 제기가 없었다면 죽기까지야 했겠느냐”며 혀를 찼다.

 

 

 

 

이런 크고 작은 변화 속에서 여성들은 온라인 게시판에서 익명의 힘을 빌리거나, 전문 상담기관에 기대거나,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더는 성희롱, 성폭력에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과거 직장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이모(30·여)씨는 ‘미투’ 열풍을 보면서 대응법을 꼼꼼히 숙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울면서 피하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이씨는 “회식자리에서 노래방을 가면 은근슬쩍 다가와 옆에 앉거나 노래를 부른다며 어깨동무를 해도 당시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미투 열풍을 보면서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걸 알았다”며 “조금이라도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무조건 사진과 영상을 찍으려 한다”고 말했다.

성폭력, 성희롱을 당했다며 전문기관을 찾아와 상담하는 건수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는 내지 않지만 지난해 매달 평균 170건의 상담을 해왔는데 올해 2∼3월에는 2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며 “서 검사의 ‘미투’로 용기를 얻었다는 여성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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